Introduction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의학은 사회와 개인의 교육적 관계를 강조하였다. 개인적 육체의 건강을 지향한 의학은 신체의 올바름을 교육목적으로 하였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잘 살아감의 방식을 논하고자 했던 철학은 영혼의 건강을 학문적 토대로 두었다[
1]. 이에 9세기 중세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의학교육은 신학부, 법학부, 교양학부와 더불어 유럽각지의 약 50여개 대학으로 전해졌는데, 7년 정도의 의학사 또는 10년 정도의 의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 학생들은 그리스·로마의 의학고전을 바탕으로 한 교양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했다[
2]. 의학이론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은 독해를 통해 사변적 이론을 습득하는 같은 종류의 활동이라고 여겨졌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삶의 방식을 근본적인 물음으로 진행하였다. 이러한 전통적 교육은 19세기 초반까지 계속되었으나, 과학의 방법론과 성과가 중요시되면서, 인간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교육과정에서 점차 소홀히 다루게 되었다[
3,
4]. 특히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점으로 한 의료기술의 발달은 혈액 투석의 기회 배분, 배아의 지위, 연명의료기술의 발달 등 공동체 속 윤리·도덕적 문제들과 생의학이 충돌하게 되면서 과학중심 의학의 무기력함과 위태로움도 점차 드러내었다. 이렇게 질병치료가 중심이 되는 생물학적 접근은 만성질환자의 삶의 질 또는 환자자체의 사회·문화적인 존엄을 의학 교육의 중심부에서 점차 멀어지게 하고, 전통교육의 본질이었던 밀접한 관계의 의학-철학 관점과는 모순을 보이며, 현대의학의 질적 위기가 드러냈다.
한편, 최근에는 의료인의 윤리의식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커지면서 의료인문학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5-
7]. 이에 따라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환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의 태도를 갖도록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의학교육 교과과정에는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의학-철학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목적을 이해시키고, 의사로서의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위한 역할과 책임을 체화시키기 위한 전통적인 의학교육에서 논하고자 했던 사변적 이론과 담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의학교육에 있어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최근에는 의료인문학 또는 인문사회의학 등의 영역이 의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대한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저자들은 대구지역 1개 의과대학에서 1년여에 걸쳐 의학, 철학, 사학, (의학)교육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등의 교육전문가 10명이 의료인문학 교과목으로 더불어사는의사(1)을 개발하고, 한 학기 동안 시행한 경험과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인문학 교육의 방향성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Significance of 「Doctor who lives together (1)」
「더불어 사는 의사(1)」 수업 1차시 오리엔테이션 중 학생들에게 더불어 살아감의 가치에 관한 주제의 강의 시작과 16차시 학습 종료 후, 2회에 걸쳐 학생들의 인식을 5점 척도 및 자유의견 기술로 조사하였다. 1차시에는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교육과정을 통한 인성교육 또는 자기이해의 가능성을 설문했다. 16차시 수업이 종료된 이후에는 먼저, 인성교육과 자기이해에 대한 학습성취도를 질문하고, 다음으로 5점 척도로 이 수업에 관한 내용·구성(연계강의, 특강, 인문학콘서트)·평가방법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흥미있었던 수업주제(중복선택 가능)와 개설 희망하는 주제(2개 이하 선택)를 객관식으로 설문하였다.
인성교육의 범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개인이 갖추어야 할 자기존중, 성실, 배려 및 소통, 책임, 예의, 자기조절 및 자제력, 정직 및 용기, 지혜, 정의, 사회적 책무성 등의 한국 개발 연구원(Korea Development Institute, KDI)에서 제시하고 있는 덕목으로 한정 지어주었고[
14],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라고 기간을 명시하였다. 1차시 때 80여명의 학생들의 대답은 인성교육의 필요성은 4.7점, 교과과정을 통해 인성덕목 함양 또는 자기이해의 가능성은 3.9점으로 대답하였다.
필요한 이유를 크게 5가지 긍정적 응답 순서대로 나눠보면 첫번째는 환자(생명)를 대하는 직업으로서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두번째는 지식·술기를 배운 의학적 실력이 인성교육 없이 사용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고, 세번째는 의료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환자 및 동료를 대하는 태도 및 의사소통에서 의식·무의식적인 언어사용은 중요한 삶의 자세이며, 네번째는 의학적 지식을 떠나서라도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다섯번째는 의학적 지식 습득만으로는 자신의 생활이 피폐해지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는 답변을 하였다.
학교교육을 통한 인성함양의 가능성에 대한 서술형 질문에 대해 크게 5가지의 부정적 응답을 순서대로 나눠보면, 첫번째는 강의식 교육이나 보여 주기식의 교육방법으로는 한계가 있고(이론과 실제현장의 다름), 두번째는 본인에게 울림이 없는 수업내용은 시간적 낭비라는 것을 중·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으로 안다고 했으며, 세번째는 천성이 모두 다르니 배움은 자신의 꾸준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네번째는 1-2회성 또는 단기간의 교육으로는 불가능하지만, 6여년에 걸쳐 계속 지속된다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으며, 다섯번째는 다양한 케이스 별로 학우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들었으며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다면, 공동체 가치를 배우고 보편적 도덕적 원칙을 집단지성으로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학생들은 필요성에 비해 가능성을 더 낮게 보고 있었지만, 선행연구에서도 학생들이 의사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가치가 지식, 술기와 함께 자신에게 체득되어야만 훌륭한 의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6,
11]. 이것은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도덕·윤리의 이론 점수가 졸업 후 학교 담장 밖에서의 개인이 실제적인 삶과는 관계성을 크게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이미 인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의미는 의과대학 교과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공감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학생이 스스로 인식·성찰하게 하는 교과과정 구성의 중요성과 함께 교육방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교수진들은 한 학기 동안 더불어 살아가는 의사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였고, 16차시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시행한 ‘이 과목이 자신의 인성교육과 자기이해에 대해 도움이 되었는가?’의 5점 척도 질문에 학기 초 3.9점(평균)으로 가능성을 낮게 보았던 학생들은 두 항목 모두 4.3점(평균)의 성취도를 보였다.
인성함양 및 자기이해에 도움에 관한 서술형 질문을 크게 5가지 응답 순서대로 나눠보면, 첫번째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과거 행위를 성찰하고, 향후 의사로서의 삶의 목적을 고찰해보았다고 했고, 두번째는 답을 선뜻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 많아서 (의료)윤리적인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조원들과 함께 정답이 없는 질문을 통해 협력과 집단지성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고 했으며, 세번째는 과도한 학업량과 경쟁이 심한 의과대학 생활에서 자신의 성적에만 반영되는 동료평가를 통해 타인을 칭찬하고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향후 더불어 살아갈 의사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사고방식을 실제적으로 함양하게 해 주었다고 했다. 네 번째는 전공과목 학습 및 이해에 있어서 의료인문학이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한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해 주었다고 했으며, 마지막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자신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 결국 사고의 폭을 넓혀 다양성에 대하여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의사로서 사회적 책무성을 인지할 수 있게 하였다고 답했다. 기타로는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과목’ 또는 ‘1주일에 두 시간 수업 희망’이라는 응답 등이 있었다.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 및 과목의 향후 개선점에 관한 서술형 질문을 크게 5가지 응답 순서대로 나눠보면, 첫번째, 수업에서 이해를 하더라도 실제 일상에 적용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였고, 두번째, 촉박한 조별토론 시간이 아쉬워서 향후 토론 시간을 더 늘리면 좋겠다고 하였으며, 세번째, 심화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기 위해 토론 시간 전체에 조별로 교수님께서 한분씩 계속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네번째, 실제토론에서 누가 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지 정확하게 평가할 방법이 없다는 의견과 강의마다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거나 평가를 P/F로 하면 부담이 더 적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에 대한 응답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기타의견으로는 ‘열심히 하였는데 한 학기동안 상장을 받지 못하여 아쉬웠다’거나, ‘발표를 더 많은 학생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5점 척도로 조사한 다음 세가지의 만족도에서 학습내용은 4,6점, 수업구성은 4.5점, 평가방법은 4.3점으로 대답하였다. 주제별 관심도는 치료적 공감(22%), 고정관념(17%), 원칙과 융통성(16%), 행복이란 무엇인가(14%), 우리학교 의대의 역사와 학교사랑/생활예절과 에티켓/주체의 동일성(9%), 비폭력적 대화법(5%)으로 나타났다. 의료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딜레마와 연결된 토론주제에 학생들이 더 흥미를 보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개설희망 주제에 대한 5점척도 결과는 의사소통/관계(18%), 음악(17%), 철학/문학(14%), 의학사/예절 및 에티켓(10%), 미술(9%), 글쓰기/역사(4%)의 순서를 보였다. COVID-19 영향으로 비대면 수업을 경험했던 학생들이 학우들과 의견을 나누며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는데서 시작하는 의사소통 및 관계적 측면과 예절(에티켓)에 의학교육은 더 관심을 가져야 함을 알 수 있었고, 학생들이 예술 및 문사철(文史哲)분야와 의학을 융합한 주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결과를 반영해 이러한 분야의 수업 개발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공동체적 가치가 규범적 접근으로만 다가가는 경우, 실제적 학생의 삶에 녹아들어가 체득되게 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이미 이 사회의 병폐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의학교육은 ‘자신의 성장은 동시에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덕(德) 윤리적 접근으로 학생들이 직접 느끼도록 해야 한다[
6]. 이러한 자신의 목적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토대가 되었을 때, 의료 환경에서 의사로서 환자와 동료를 대하는 좋은 태도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케이스별 문제 상황 시 현명하게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낼 수 있다.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담론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것은 집단지성을 신뢰하게 하고, 협력을 통해 보편적 도덕 원칙과 행위방식을 도출하게 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교육에 노출되었을 때, 학생들은 다양한 현상과 직면함에 있어, 관습적인 지식을 무조건 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의문을 갖고 비판적인 성찰하게 되며,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더 지혜로운 방법을 집단지성으로 흥미롭게 찾는 생활 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15].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도 이와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더불어 사는 의사(1)」의 교과목은 학생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에 대한 필요성만큼 그 가능성도 믿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시초의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더불어 사는 의사(2)」와 「더불어 사는 의사(3)」의 교육개발의 수정과 보완이 더 필요하고, 교육내용과 가치 함양에 대한 평가방법에 대한 후속연구가 더 필요하다.